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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개발 일기

개인의 능력과 조직

by 째스터 2021.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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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에게 첫 팀장님이었던 전 회사 팀장님께 전화가 왔다.
별 다른 일은 아니고 내가 개발에 많이 참여했던 제품이 잘 팔리고 있어서 생각이 나셨다고 한다.
팀에 불만이 있다기보다 조직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회사를 떠났기 때문에 나도 나름의 아련함(?)같은 게 있었는데 먼저 전화를 주셔서 감사했다.

사실 처음 팀에 왔을때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력 그 자체였다.
그에 반에 경력직이었던 동기는 빠르게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내가 불쌍했는지 잘 챙겨주시던 당시 선임 연구원분이 어떻게 실력을 늘리는지 알려주셨다.
"우리 팀은 여유로운 시기가 늘 있다. 그때 놀지말고 프레임워크 스펙문서를 읽고 공부해라."

동기가 핫딜, 뽐뿌 게시판을 찾아볼때 나는 MS Docs와 기술 블로그를 읽었다.
Postback이 뭔지, 프레임워크의 Life Cycle이 어떤지, es6에 어떤 기능이 생겼는지,
polyfill이 뭔지, debounce, throttle이 뭔지…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력에 퀀텀 점프가 왔다.
남아공 프로젝트가 시작한 후에는 나에게 알게모르게 주도권(?)이 생겼음을 느꼈다.
라이브러리를 만들자고 하면 그래! 너가 만들어줘. jquery 버전을 올려야 한다면 그래 올리자.
내가 하자는 대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갔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계산해보니 전체 이슈의 80%는 내가 처리했다.
그래서 당연히 남아공으로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다(하지만 코로나로 취소).

그러고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회식을 하는 날 팀장님이 무심코 말하셨다.

재준이가 우리 중에 제일 자바스크립트 잘할 걸?

그 말이 정말 고마웠지만, 사실 그 말은 이직의 불씨를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2년만에 여기서 제일 잘 한다면 이 사람들의 실력은 왜 멈춰있지?'
사실 프레임워크를 포함해서 모든 개발을 잘 하시는 분도 계셨고, DB를 DB팀보다 잘 하시는 분도 계셨고, 응용 프로그램 개발을 잘 하시는 분도 계셨다.
하지만 그 외의 8명의 개발자는 그냥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조직에서 그들보다 절대 더 나은 대우나 직책을 받을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잘해서 이번에 최고 인사평가 등급을 받았다면, 다음 인사평가는 최하등급이 예정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게 그 회사의 조직문화였다. 돌아가면서 좋은 평가를 받는.

능력만큼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능력을 안 키워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온지 10년 넘이 넘은 베트남 팀원도 한국말을 하나도 못하고,
아무도 새로운 프레임워크, 라이브러리를 도입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것이고,
회의실보다 옥상, 스타벅스에 더 많이 가는 회사가 된 것이다.

내가 아무리 실력을 더 키우더라도 나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그 회사에서 나는 항상 그들의 아래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떠났다. 가장 좋은 인사평가를 잘 받았던은 그 해에.

내가 이직 후에 인정받아서 2번 진급을 하게 되었다고 하자 전 팀장님은 씁쓸해 하셨다.
"죽쒀서 남줬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워라밸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괜찮아요. 팀장님 덕분에 이직할 수 있었는걸요.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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